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온정주의와 판타지 사이에 선 <누나>


입력 2007.01.19 10:26 수정        

MBC 주말드라마 <누나>, 2% 부족

MBC 주말드라마 <누나>가 사람들로부터 새삼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도 무려 방송된 지 6개월 만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몇 년간 주말드라마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MBC로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누나>는 <한강수타령> 후속작으로 가족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으로 호평을 받고는 있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하였다. 더욱이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소문난 칠공주>를 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소문난 칠공주> 종영 이후 <행복한 여자>를 상대로 단번에 시청률이 오르더니 15, 16일분 방송에서는 시청률 20%를 누르며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당초 <전원일기>, <엄마의 바다>, <그대 그리고 나>를 집필했던 스타작가 김정수 씨가 집필, 송윤아 톱스타를 기용하여 화제가 되었지만 시청률 면에서는 저조하였고, 조기 종영설까지 시달리는 등 내우외환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20% 대의 시청률은 남다른 의미를 준다.

게다가 이 작품은 대가족인 건우네 가족을 중심으로, 집안이 몰락한 승주 3남매가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그려 오랜만에 만나는 따뜻한 드라마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시청률을 떠나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당초 기획대로 밀고 나갔다. 이 점이 시청자들에게 눈에 뜨이게 한 가장 큰 원인이다.

사실 최근 들어 ‘욕먹는 인기드라마’라는 공식이 탄생되었다. <하늘이시여>, <소문난 칠공주>는 비정상적인 캐릭터들과 극단적인 내용 전개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지만 시청률에서는 줄곧 1,2 위를 다투며 인기리에 종영된 바 있다. 이러한 드라마의 흐름에 역행하는 드라마가 바로 <누나>였다.

물론 방영 초기 93년도 작 <엄마의 바다>와 내용 소재와 설정이 비슷하여 논란도 있었지만 2000년대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엄마의 바다>와는 또 다른 따뜻한 감동과 사랑이 있는 드라마가 되었다.

특히, 극중에서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오현경)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인생의 관조가 섞인 지혜롭고 슬기로운 말들이 이미 한 차례 화제가 되었고, 가족들 간의 갈등과 화해와 용서 등을 잔잔하게 다루고 있었다. 아마도 이미 <누나>는 시청률이 언젠가는 오를 일만 남아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사람이 있는 드라마

사실 누나는 선정적이고 극단적인 내용으로 전개가 가능하였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사랑받는 지금, 추세를 따라갔다면 오히려 상대 경쟁작 <소문난 칠공주>와 시청률 면에서는 치열한 싸움을 했을지도 모른다.

헌데 <누나>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당초 본 기획의도대로 초심을 잃지 않고 모든 연기자들이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내며 내용을 이끌어 갔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드라마 한 편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다.

드라마는 부자였던 승주네 가족이 아빠의 사업 부도와 실종으로 인해 한 순간 몰라 했다. 그 전까지 천방지축 된장녀였던 승주는 집안의 큰 딸이지만 철이 없었고 그의 남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의지하던 아빠가 사라지자, 함께 살던 수아네(허영란, 조형기, 송옥숙) 식구들은 등을 돌리고 돈을 가로챈다.

물론 그 전에 함께 살았지만 늘 승주네 가족의 일을 돌봐주고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수아아빠와 엄마의 모습이 그려지고, 늘 승주를 부러워하는 수아의 모습이 등장하여 이들이 등을 돌릴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보여줘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와 반대로 대가족으로 식구들 간의 여러 갈등이 있지만 그것은 늘 화해와 용서로, 사랑으로 감싸는 건우네(김성수, 박근형, 김자옥) 가족이 있다. 그리고 그 건우네 가족을 중심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승주는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늘 옆에서 돌봐주는 건우가 있다.

건우네 가족의 유일한 갈등은 건숙(윤유선)은 이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찾아와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엄마(김자옥)에게 툴툴거리며, 갈등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마저도 건우네 가족은 화해와 용서로서 서로 간의 갈등을 융합한다.

이렇게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기본적으로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때론 환경에 의하여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수아네 식구들의 악행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돈과 사람 어느 것이 위에 있느냐

그리고 <누나>의 중요한 매개체는 ‘돈’이다. 돈 하나에 사람의 마음이 변심하게 되고, 돈 하나에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빈부 차이로 인해 사랑하는 연인이 헤어지는 등. 소위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는 지금의 현상에 경종이라도 울리고 싶은 듯 드라마에서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수아네는 자신을 거둬들인 승주네를 배반하고, 승주와 건우가 빈부차이로 헤어지게 되고, 몰락한 승주가 돈의 귀함을 깨닫고, 자신을 따뜻하게 반겨주는 건우네 가족의 사랑으로 ‘돈’이 세상의 제일이 아님을 알게 됨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러한 ‘돈’의 가치를 따끔하게 일러주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미래를 예언하는 듯 한 할아버지(오현경). 그는 적당한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어느 순간 허를 찌르는 말을 내뱉는다. 그의 존재는 <누나>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명언은 대략 이렇다.
“재물은 마음이 평안한 집에 머뭅니다.”, “팔만대장경을 한 자로 줄이면 ‘마음’ ‘심’입니다.”, “참깨, 들깨 노는 데 아주까리는 좀 빠지십시오!”등등.

할아버지의 단 한마디는 돈에 의해 변질되는 사람들과 그러한 사람들이 만연하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것으로 <누나>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매력 중의 하나이다.

<누나>의 자기모순의 한계점

하지만 <누나>는 명품 드라마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문제는 월메이드 드라마와 같은 그윽함이 있지 않다. 그렇다고 노골적이지도 않다는 점이다.

즉, 승주와 수아를 대립각으로 대비시킨 가운데 그 중심에는 ‘돈’이 있다. 그런데 원래 부자였던 승주는 돈을 잃고 난 후 세상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된장녀에서 억척녀로 거듭난다. 그리고 호프집 알바부터 청바지 판매, 문제 학생 과외까지 능수능란하게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반면 수아는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었지만 그의 온순한 성격은 돈과 함께 이기적이고 악랄하게 변화한다. 그리고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건우네 가족들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가게 되는 원인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는 우리가 늘 보던 신데렐라 드라마를 한 번 비틀어 이야기할 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즉, 원래 공주였던 승주와 그 자리를 빼앗은 수아. 수아는 그 자리를 지키고자 악행을 행하게 되고, 승주는 어느덧 돈과 물질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주성가한 후 원래 공주로 복귀한다는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부자의 기질이 다분해 제멋대로였던 승주를 물질과 상관없이 늘 바라봐주는 건우는 이상하게 수아가 부자가 되어 행한 것들에 대해서는 포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돈이 없어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부자로 그려지는 건우네 가족 또한 너무나 이상적인 인물들도 마치 동화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들 같아 현실성이 떨어진다. 가난하지만 마음만 부자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과정이 이들에게서는 ‘돈’이라는 자체가 무용지물처럼 여겨지며 무릉도원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이상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이 사회가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싶은 욕심에 건우네 가족을 그렸다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온정주의 판타지로 빈부격차와 선악구도를 떠나 모든 것을 착하게만 바라보고 싶어 하는 강박관념에 의해 탄생한 것들이다.

물론 아직 이러한 작품이 끝나지는 않았다. 또한 자극적이고 비상적인 일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판치고 있어 그나마 따뜻한 세상 사람들에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누나>는 분명 좋은 드라마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좋은 드라마를 넘어서 모든 사람과 공감하고자 한다면 온정주의 판타지를 벗어버리고 조금 더 현실성 있는 드라마로 이끌어 가기를 기대해본다.

데일리안 넷포터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