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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서울,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하라"


입력 2006.04.17 21:00 수정        

17일 시청광장서 중증장애인 삭발결의,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 호소

"머리카락이 아니라 우리의 분노와 좌절과 절망, 이 시장도 알아야"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한 여성 장애인이 움직이지 않는 몸을 휠체어에 기댄 채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한 여성 장애인이 움직이지 않는 몸을 휠체어에 기댄 채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1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중증 장애인 39명이 삭발 결의 대회를 가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이하 전장연 (준)) 주최로 열린 이 집회는 활동이 부자유한 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명박 시장의 확답을 받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웠다.

전장연(준)는 "4월20일을 장애인의 날이라 해서 정부는 각종 위로행사를 열지만 그런 것은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며 "중증장애인도 인간이다, 인간처럼 인간답게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로부터 배제된 채 집안에서 방치되어 인간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에게 하루의 유흥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비판인 셈.

여기에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부적절한 서울시 장애인 복지과장의 발언으로 증폭됐다. 전장연(준)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수차례 이 시장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고 장애인복지과장과의 면담 역시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 더욱이 복지과장과의 2차례에 걸친 면담을 통해 "활동보조인 등의 제도보다는 시설을 아름답게 보완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지 않느냐"는 비현실적인 발언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장외투쟁과 진입시도 등을 벌였으나 서울시 복지과장과의 면담에서 "노력하겠다, 기다려달라"는 불확실한 답을 받았다고 전장연(준)은 주장했다. "장애인을 이해하려는 태도없이 오만함으로 일관하는 ´야만의 서울´", "독재자 이명박"이라는 비난이 계속되었다.

전장연(준)은 지난 3월 20일 활동보조인제도화를 요구하며 시청 앞에서 노숙 농성에 돌입해 현재까지 29일째를 맞고 있다.

이 날 행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참여단체 소개와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삭발식까지 진행되었다. 그러나 삭발식 이후 각자 자신의 머리카락이 담긴 통을 들고 "이명박 시장에게 우리의 뜻을 전달하겠다"며 시청 장애인 복지과로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다소 충돌을 빚었다.
"시장을 보러 가는 길을 왜 막는거냐" 전경들의 강한 제지에 거세게 항의하며 항의하고 있는 장애인 여성. "시장을 보러 가는 길을 왜 막는거냐" 전경들의 강한 제지에 거세게 항의하며 항의하고 있는 장애인 여성.

시청으로 진입하려던 장애인들과 경찰은 약 30분간 실랑이를 벌이다 강한 저지에 부딪치자, 장애인들이 일제히 풀밭을 가로질러 2차 집입을 시도한 것. 경찰의 제지에 장애인들과 집행부 등은 "왜 길을 막느냐, 무슨 이유로 우리의 앞을 막는거냐"며 멱살잡이와 욕설이 이어졌다.
격앙된 시위대의 진입시도에 시청 분수대가 작동하기 시작하자 흥분한 경찰 관계자와 전장연(준)측 관계자의 멱살잡이가 벌어지고 화분을 던지는 등 격렬한 항의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동권이 아니라 생존권, 가족을 살인자로,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지 말라"
이날 집회에서 "황제놀이에 눈이 먼 정부가 살인자",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죽이지 말라"는 강한 성토가 이어졌다. 이는 최근 몇년간 생활고에 따른 장애인 가족의 살해가 빈번해지자 그에 따른 장애인들의 위기감과 불안감이 이날 시위에 반영되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집회에 참석한 장애인들은 "이동권은 생존권"이라며 한결같이 절박함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현실적으로 활동보조인을 고용하기 여의치 않은 장애인이 태반인데다 가족이 그 부담을 안고 있어 악순환이 연속되고 있다. 특히 장애를 차이가 아닌 차별로 인식하는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가족은 장애인 자녀를 은폐하기 때문에 교육과 사회활동에서 소외당하는 실정이다.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근무중인 문애린씨(27, 뇌병변장애2급)는 "활동보조인서비스는 우리만 좋자고 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우리가 움직이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데 그때마다 주위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순 없는 문제 아닌가"라며 불만을 터트렸다.

문씨는 "후천적 장애인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노력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정확한 실태조사와 책임있는 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으로 활동중인 김정씨(28) 역시 "지금과 같은 태도는 자신의 국민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뚝섬에서 어려운 걸음을 했다는 강현정씨(28)는 "서울시는 지하철 등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우리더러 저상버스를 타거나 콜택시를 부르라고 하는데 공급도 적다."며 정부와 서울시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전장연(준)측의 입장 역시 다르지 않다.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를 표방하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참여에는 우리가 배제되어 있다"며 "장애인은 여전히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처절한 삶을 살고 있다"고 비판의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서울시의 안일한 행정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에게 기다리라는 말은 방안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라는 의미와 같다"며 제도적 노력의 성과를 보여주길 요구했다.

한편, 전장연(준)은 "우리의 행사는 일회성 퍼포먼스가 아니다. 이명박 시장의 면전에 우리의 머리카락을 놓고 올 것이다"라며 투쟁을 지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어, "누가 시장이 되든지 저 문을 열고 당당히 들어가려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해야 할 것"이라는 말로 선거기간 중에도 압력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장애인 문제에는 모르쇠 일관하는 정부와 서울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5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장애인 수는 21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34%에 해당하는 75만명이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며 특히 이들 가운데 34만명은 절대적인 도움제공자없이는 거동하기 어렵다는 것.

"씁쓸하게 웃었지만..."삭발식을 하며 처음에는 애써 웃던(좌) 이양선씨가 눈물을 떨구고 있다.(우) "씁쓸하게 웃었지만..."삭발식을 하며 처음에는 애써 웃던(좌) 이양선씨가 눈물을 떨구고 있다.(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의 활동보조인 예산지원은 100명 남짓. 장애인의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법적 제도적 미비 역시 개선될 점으로 꼽힌다.
1997년에 제정된 편의증진법은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에 대한 차별현상의 위헌적 현실을 일정부분 해소하고 장애인 이동 현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법적 강제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어 왔으나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편의증진법은 이동권에 관련된 부분에서만 볼 때 버스 자체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보장, 편의증진법의 소관 부처가 건설교통부로 이관되었음에도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명시된 점, 편의시설에 대한 해석이나 적용을 심의할 수 있는 상설 심의기구에 언급이 부재함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즉 실질적인 이동권 행사라는 부분이 감과되고 있는 것.

여기에 건교부가 내놓은 ´지하철역사 ´신, 개축´시 안전에 취약한 휠체어리프트 대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의무화´는 기존 역사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명무실한 생색내기용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현행 장애인 할인혜택 또한 빈축의 대상이다.
현재, 대중교통 버스와 관련된 법인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경우,6세 미만의 소아에만 한하여 할인 규정이 적용되고 있는데 이는 위헌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장애인복지법 제 16조와 장애인복지법시행령 제 14조에 의하면 등록장애인에 한해 이용요금을 할인하는 규정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
올해들어 한국철도공사가 실시한 장애인 할인혜택 축소 또한 장애인의 빈축을 사고 있다. 장애인의 대부분이 고정 수입이 없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철도 요금은 부담스럽다는 입장. 뇌병변1급장애릴 지닌 이승연씨(34)는 "지방에 사는 장애인들이나 본가가 지방에 있는 장애인들은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그나마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철도였는데 자신들의 재정적자와 부실을 우리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현실적인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 역시 장애인 문제에 대한 안일한 태도를 엿보게 한다.
장애인들의 절박한 호소가 적혀있는 푯말. 장애인들의 절박한 호소가 적혀있는 푯말.
장애인복지법 제 51조 1항에는 "국가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을 경영하는자가 각 호에 해당하는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에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여객자동차운수사업자에 대하여 소요자금의 일부를 보조 또는 융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항목의 각호에 ´여객자동차운수사업자가 ST서비스(special transport service)를 제공할 경우´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는 것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ST서비스를 민영버스사업체도 시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9조 4항에서 언급되고 있는 횡단보도 설치 관련 규정에서 휠체어 장애인들의 안전하고 편리한 횡단보도 통행에 관한 언급이 없어 통행시간이 일반인보다 느린 장애인에의 배려가 부족하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서울시의 태도 역시 장애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시가 장애인 활동보조인 1년 예산으로 책정한 금액은 2억 4천만원. 그런데 지난 4월 15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시가 주최한 행사에 소요된 비용은 2억원에 달한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기다림을 요구한 서울시가 일회적인 이벤트에 막대한 돈을 부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

전장연(준)가 "정부부처는 서로 책임부처가 아니라며 발뺌하려 하고 서울시는 비효율적인 놀이에 1년 예산에 맞먹는 돈을 쏟아부었다"고 포화를 퍼부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연유한다.

인권국가를 표방하면서 정작 장애인 인권에는 무관심한 정부에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열리는 위문행사가 아닌 현실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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