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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앞에 놓인 잔, 독배일까 성배일까


입력 2008.12.26 12:25 수정        

26일 민주당 기습 본회의장 점거에 한나라 ´허´ 찔려

주말까지 극적 타협 없으면 국회의장 직권상정 ´외길´

‘법안전쟁’을 선포한 한나라당이 26일 허를 찔렸다.

이날 아침 민주당 의원 54명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방의 모든 문을 걸어 잠갔다.

작전은 성탄절 밤부터 시작됐다. 민주당 의원 2명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아침 8시 45분 미리 확보해 둔 이윤성 국회부의장 출입문 맞은편 문을 통해 52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진입에 성공했다.

한나라당은 기습적인 민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점거에 뒷통수를 맞았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소식을 접하고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26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자리에 민주당의 국회 본회의장 점거소식이 담긴 메모장이 놓여 있다. 26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자리에 민주당의 국회 본회의장 점거소식이 담긴 메모장이 놓여 있다.

무소불위 직권상정… 도대체 뭐기에?

민주당이 주요 상임위장에 이어 이날 본회의장을 점거한 것은 ‘직권상정’이라는 국회의장의 무소불위의 권한 때문이다.

국회법 제85조 1항은 “의장은 위원회에 회부하는 안건 또는 회부된 안건에 대하여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의장은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하여야 한다(개정 2005.7.28)”고 돼 있다.

이어 2항에는 “제1항의 경우 위원회가 이유 없이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의장은 중간보고를 들은 후 다른 위원회에 회부하거나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 조항을 통상 ‘직권상정’이라고 부른다. 직권상정은 법률용어가 아닌 언론용어인 셈.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모든 상임위를 무력화시킨다. 국회 법안처리 절차는 각 상임위 논의와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이 모든 과정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한나라당 한 중진 의원은 “국회법을 검토한 결과 상임위에서 상정되지 않은 법안들도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국회의장실까지 점거하면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 포기 약속”을 요구하는 이유다.

민주당 26일 한나라당의 쟁점 법안에 대한 처리에 반대해 국회 본회의장 점거에 들어간 가운데,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본회의장 입구를 찾은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 민주당 26일 한나라당의 쟁점 법안에 대한 처리에 반대해 국회 본회의장 점거에 들어간 가운데,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본회의장 입구를 찾은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

김형오 중재안, 여야 거부… 그렇다면 선택은?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은 당적을 보유할 수 없다. 의사진행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회의장이 ‘정파성’을 벗어던지기란 쉽지 않다. 김형오 국회의장 역시 원적인 한나라당으로 팔이 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임기 2년이 끝나면 당적을 다시 보유할 수 있게 한 법규정도 국회의장이 당파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배경 중의 하나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현재까지 직권상정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번 주말까지는 최대한 여야 중재에 힘을 쏟는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극적인 타협이 없는 한 지금 분위기로 중재는 물 건너 갔다.

한나라당은 이번 회기에선 민생·경제법안을 처리하고 이른바 사회질서법은 협의해서 추진하자는 김 의장의 중재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직권상정 포기 약속”을 하라는 민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비장의 무기를 내려놓고 국회를 이끌 수는 없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본회의장 기습점거 소식을 들은 뒤 “쟁점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하면 국회무용론이 계속된다”며 “연말까지 법안 처리는 불변”이라고 더욱 강경해진 자세다.

김 의장에 대한 ‘직권상정’ 압박이나 다름없다.

민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함에 따라 이제 ‘칼자루’는 김형오 의장이 쥐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김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고 민주당 의원들을 끌어낸 뒤 쟁점법안들을 직권상정, 한나라당 의원들만으로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날치기의 주역이 됐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김 의장이 ‘후폭풍’을 각오하고 ‘직권상정’이라는 칼을 빼들지, 화약고가 된 국회에 불길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데일리안 = 김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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