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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통일 대비 탈?


입력 2008.11.09 10:43 수정        

<인터뷰②>´한국 연구 20년, 한국 생활 10년´ 란코프 교수

"햇볕정책 퍼주기는 안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올바른 전략"

-대북지원에 있어 햇볕정책밖에 대안이 없다고 했지만 햇볕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햇볕정책을 비판했었지만 사실상 대북지원에 있어 햇볕정책밖에 대안이 없다. 햇볕정책은 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아주 올바른 전략이다.

물론 햇볕정책을 무조건 맹신하거나 낙관하진 않는다. 남한의 일부 좌파들이 ‘햇볕을 통해 북한의 정책을 변화하고 개혁개방을 시작하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햇볕정책은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순 있지만 정권의 인식이나 태도 그리고 정치 노선을 많이 바꾸진 못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권의 의지보다 국민의 의지다. 자발적인 사회의 변화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정부의 변화보다 더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있다. 햇볕정책은 북한 정권이 아니라 북한 국민들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돼야 하며,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북한에 조건 없이 주는 것은 북한의 발전을 촉진하지 못하고 김정일 체제 유지를 위해 악용될 수 있다. 대북 쌀 지원은 어땠나. 군대, 국가 보위조직 등 특정 계급이나 군대에 먼저 쌀 배급을 주고 나머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정권에 충성하고 보호하는 사람들은 쌀을 제공받지만, 일반 국민들은 탄압받고 있다.

따라서 대북지원은 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개성공단 같은 것은 아주 좋고 그런 교류협력을 보여주는 시설들이 많을수록 좋다. 개성공단이 반쪽짜리 교류협력이라고 해도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면서 이질감을 줄이고 북한 사람들은 남한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고 남한이 잘 사는 것을 알게 돼 김정일 정권을 파괴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철장 쳐놓고 몇몇 장소만 가는 식이 아니라 평양 외에 다른 도시를 관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은 ‘보이지 않는 교류’를 만들 수 있는 기회다. 비록 멀리서 보이지만 남한 사람들의 옷차림이 세련되고, 피부가 고운 모습을 보면 ‘특권 계급만 뽑혀서 선전용으로 왔다’고 처음에는 믿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교류협력은 북한 체제를 서서히 움직이는 힘이 될 것이다.

또 일반 주민들과 남한 사람들의 접촉이 어려워도 국가 보위부 등 이른바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에게서 남한에 대한 지식이 퍼질 수도 있고, ‘남한이란 이런 곳이구나’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도 (변화의 싹은) 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재정권의 본질을 잊으면 안 되지만 남한식으로 개혁개방을 강행해선 곤란하다. 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해야 하고, 북한 주민들이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남한이 북한을 힘으로 무장해체할 능력과 의지가 지금 없지 않나. 독재체제를 무너지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북한 주민의 민주화 운동 혹은 민중혁명인데,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삶을 견디는’ 이외의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북한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주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을 통해 외국과 관련된 정보가 들어가고 있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북한은 정보의 섬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햇볕정책 등을 통한 교류협력으로 외부의 자극에 북한 주민들이 눈을 뜨고 변하려는 의지를 북돋아줘야 한다."

- 북한의 ‘연착륙’을 위해 개혁개방에 동조하리라 보는가.

"북한의 입장에서 개혁개방은 위험한 일이다. 한번 개방되면 변화는 가속도가 붙는다. 동독은 1989년 안정적인 공산주의 국가였고 야당의 반정부운동, 노골적인 정부비판 등이 전혀 없던 국가였지만 불과 1년만에 정부 통제가 약화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북한도 이를 알고 있다. 개혁개방을 하게 되면 북한 체제는 6년 이내에 무너질 것이며, 이처럼 개혁개방의 대가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므로 완강하게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개혁개방에 적극적으로 나오긴 어렵다.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도 성급한 개혁개방은 사회갈등과 같은 역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북한 주민은 남한의 실상을 잘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개혁개방이 실시되고 북한 주민이 남한의 실상을 알게 된다면 과연 그들의 생활수준이 남한과 비슷해질 때까지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발전상을 눈으로 접하게 되면 북한의 경제문제가 즉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질 수 있는데, 남한과의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것에서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 정부의 유지와 점진적인 사회-경제적 격차 해소’라는 연착륙은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중국식 개혁개방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식 모델을 북한에 적용시키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한 민족’이라는 감상적 민족주의로 접근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대북정책에 대한 생각은?

"대북정책에서 중국식 개혁개방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월등한 ‘남한’과 같은 경쟁상대가 없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내부 단속을 통해 체제를 유지시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중국에게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의 선진국은 ‘다른 나라’일 뿐이고, 그들의 위상이 부러울 순 있겠지만 그들만큼 국가를 잘 살게 해주지 않는 정부를 원망하진 않는다. 국가마다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불과 수백㎞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조선’인 남한이 있고, 그런 남한의 발전과 성과는 북한정권의 무지함과 무능함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남한의 현실을 아는 것으로도 북한은 체제에 위협을 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북한만의 ‘모델’이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북한에 대해 감정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무조건 포용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한반도 발전 평화 경제성과 민주화 길 가로막는 장애물인 동시에 협력의 대상이다. 북한 주민들은 정권 아래서 살아가고 있고, 갑자기 북한 정권이 붕괴되면 주민들의 고통을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환상없이 철저하게 냉정한, ‘협상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 그렇다면 남한은 북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남한은 북한이 ‘중국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통일계획 등은 그런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남한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대북정책이 없다.

남북한은 이념 때문에 대립하고 있는 관계다. 통일을 생각한다면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야겠지만, 북한과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대북관계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인지, 남한 내 정치상황을 타개하기위해 대북정책을 결정한다. 대북 정책이면 북한이 우선돼야 하는데도 남한을 더 많이 고려한다.

더욱이 남한 사람들은 북한을 볼 때 남한의 안경을 통해서 본다. 남한을 기준으로 놓고 북한을 바라보기 때문에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문제로 다룬다. 객관적인 판단은 어려운 것이다. 대북정책을 토론할 때도 남한의 국내 정치가 대립되는 상황이 그대로 연출된다. 북한은 간데없고 대북정책의 목표나 성격이 남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만을 얘기한다.

가령, 북한 김정일 체제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김정일 체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독재다.

북한의 국가 통제는 ‘금서’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 비해 매우 부드러운 독재를 편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알고 있었고, 경제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독재를 선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기약없는 독재다.

북한 사회를 정상화 시키는 방안은 남북한 어느 곳도 만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양측 간에 남아있던 감정의 골이 배타감과 적대감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적과 같은 해결책은 없다. 불가피하다면, 문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 북한의 급변 사태는 급격한 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아직 남한의 통일정책은 추상적이라는 지적이다.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화합’이 되기 위해 통일 정책을 세울 때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과정을 지켜봤던 나로선 남북통일은 ‘어렵겠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말해주고 싶다. 소위 ‘통일비용’과 같은 경제적인 문제, 북한과의 통합에서 오는 사회적 혼란과 문제 등으로 통일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통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에 이득을 안겨줄 것이다. 통일로 인해 한국은 장기적으로는 정치, 사회적으로 더욱 안정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로 남한 내에서의 준비도 중요하지만 북한 주민들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 ‘통일 코리아’를 위해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농장 개발이나 컴퓨터 지원 및 교육 등 북한 기술자와 전문가를 포함한 주민들에게 선진기술 전수와 시장경제 받아, 북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흔히 북한 주민을 ‘값싼 노동력’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의식을 갖고 북한 주민들을 대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그들을 남한의 3D업종 등에 종사하는 하위 계층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크다.

북한 주민들은 통일 이후 이름을 들어본 대기업 하청업체 등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것에 만족을 느낄 순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맛을 알게 된 후 승진이나 자기 계발 등에 관련해 한계에 부딪치게 되면 북한 사람들은 남한을 원망하고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이 사회적 진출을 할 수 있도록 통일 이후 그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해야 하며 남북한 대학교의 순수한 학술 교류를 통해 북한과 남한 사이에 다리 연결을 할 수 있는 엘리트를 양성해야 한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작업도 진행해야 한다.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것은 ‘대통령을 욕하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 문화적 충격이 크다고 말한다. 비록 그것이 정치적인 것일지라도 다양하고 폭넓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임을 교육시켜야 한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 이후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북한의 급변 사태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지 예측해 본다면.

"현재로선 단계적인 변화보단 급진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이 남한에 대한 진실을 알 수 밖에 없고, 절대적인 감시와 통제 속에서 지속된 고립 정책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같은 정책은 오히려 더 빠른 정권 붕괴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이나 중병 등으로 통제력이 약해지면 갑작스런 변화가 오겠지만, 그 전에는 아무런 변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변수는 있다. 1980년대 쓴 SF소설을 보면 22세기에도 소련이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 소련은 불과 얼마 뒤에 무너졌다.

당시에는 아무도 붕괴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공산권은 허물어졌다. 모스크바도 1991년까진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후 갑자기 붕괴했다. 북한의 붕괴도 이와 같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평양의 고요하고 침착한 분위기에서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붕괴의 전조는 아직 알 수 없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북한의 급변 상황을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북한 급변 상황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는 세대교체다. 이제 새로운 지도자는 30세 이하의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30세 이하의 젊은 층은 북한의 선군독재나 김일정 우상화 등의 사상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이들은 장차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북한 체제가 무너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다만 북한의 민주화 투쟁이나 민주항쟁의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처럼 개발독재를 하고 이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난 민주세력이 민주혁명을 이뤄내는 식으로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고, 억압된 체제가 장기간 지속됐기 때문에 민주항쟁이 일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만약 민주화 투쟁이 일어난다면 북한의 민중 운동은 남한보다 훨씬 드라마틱할 것이다. 절대적인 독재에 대한 반감과 불만이 쌓여온 데다 북한을 실패한 국가로 몰아넣은 지배계급을 향한 분노는 클 것이고, 때문에 북한의 민주화는 남한보다 아주 폭력적인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 향후 통일에 대비해 대안 엘리트를 양성해서 북한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북한 출신의 인물들이다. 동시에 김정일 정권과는 관계가 적은 인물이라야 한다. 그렇다면 남북한 사회를 모두 경험한 탈북자가 가장 적합하다. 이들은 북한 사회의 근대화, 민주화를 도와주고 북한 주민들이 ‘값싼 노동력’으로 남아있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포스트김 시대 북한 엘리트에는 당 간부 출신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김정일 만세’를 큰 소리로 외치던 노동당 간부들이 하루아침에 ‘자유민주 시장경제 만세’를 외치면, 이와 같이 이념을 헌옷처럼 버리는 그들에게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신뢰를 보낼 수 있겠는가. 아마 그런 사람들을 보고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살인적 독재에 대해 반역한 사람들이다. 북한 주민들에 대하서도 미안함과 의무감을 갖고 있다. 탈북자들의 사명감과 민족애는 한국에 우호적인 대안 엘리트로서 북한 사회를 빠르게 정상화시키는데 일조할 것이다."


☞<란코프 교수 인터뷰①>"대북정책, 남한만 있고 북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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