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깨고 다시 떠오른 <태양의 여자>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08.08.01 14:59  수정

<태양의 여자> 깜짝 성공 비결은?


KBS 수목극 <태양의 여자>가 ‘역전 홈런’을 날리며 성공적으로 종영했다.

퓨전사극과 전문직 드라마 등 화려한 드라마들이 득세하는 미니시리즈 시장에서 출생의 비밀, 여인들의 복수 등을 내세우며 전형적 통속극을 표방했던 <태양의 여자>의 성공은, 올해 드라마 시장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이변으로 꼽힌다.

5월 28일 첫 방영을 시작했던 <태양의 여자>의 1회 시청률은 약 6.8%(TNS 미디어리서치). 비슷한 시기에 방영을 시작한 SBS <일지매>와 MBC <스포트라이트>에도 뒤진 최하위에 그쳤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입소문을 통하여 조금씩 인기를 늘려가더니 지난 23일에서는 최초로 시청률 20% 고지를 돌파했고, 지난 31일 <태양의 여자 최종회>(20회 방송)는 자체 최고인 27.3%로 수목극 1위를 차지하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태양의 여자>의 이러한 놀라운 상승 곡선은 국내 방송가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방영 초기 한 자릿수 시청률에 그쳤던 작품이 후반부 20% 이상 시청률로 상승한 경우도 드물뿐더러, 마케팅이나 경쟁작 부재, 외적인 이슈 같은 요인에 좌우되지 않고 순전히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와 입소문으로 인하여 부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2006년 <황진이>를 끝으로, 일일극을 제외면 2년 가까이 평일 드라마 시장에서 시청률 20%대 작품을 배출하지 못하며 ‘미니시리즈의 무덤’으로 불렸던 KBS로서도 모처럼 어깨를 펼 수 있게 되었다.

<태양의 여자>의 성공은, 무엇보다 탄탄한 구성과 살아있는 캐릭터, 깊이 있는 심리묘사 등을 통하여 기존 통속극의 진부함에 대한 편견을 극복한 완성도에 있다고 할만하다. 두 자매간의 엇갈린 운명과 배신, 복수담을 다룬 이야기는, 지금도 아침 드라마나 일일극의 단골 메뉴로 끊임없이 재탕될 정도로 진부한 소재인것이 사실. 같은 시간대 방영된 <일지매>나 <스포트라이트>에 비하여 스타 파워나 소재의 신선함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태양의 여자>는 단순히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그 속에 담겨진 인간(여성)의 욕망에 대하여 설득력 있게 조명함으로서 차별화에 성공했다.<태양의 여자>의 신도영(김지수)은 지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MBC <하얀 거탑>의 장준혁(김명민)의 여성 버전을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이다. 도영과 준혁은 자신의 욕망과 성공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결국 고독하게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이카루스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린 시절 피가 섞이지 않는 동생을 몰래 내다버린 뒤 양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도영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이면에 항상 가슴속의 불안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극 구성상으로는 전형적인 악녀의 캐릭터에 가깝지만 사랑받지 못한 콤플렉스로 더욱더 사랑에 집착하는 도영의 절박함과 내적 고통은 보는 이들에게 악녀를 넘어서 연민을 자아냈다.

주로 멜로드라마에서 청초한 여성미를 보여줬던 김지수는 미워할 수 없는 악녀 도영을 연기하며, 자신의 장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차별화된 악녀 캐릭터를 선보이는데 성공했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해오는 동생에게 뺨을 때리고 거친 언사를 내뱉다가도, 또 한편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고 죄책감에 눈물 흘리는 도영의 여리고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김지수의 섬세한 연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사월(이하나)과 지키려는 도영의 갈등은, 복수극의 통쾌함보다는 서로 다른 욕망의 충돌이 주는 인간관계의 부조리함과 복잡 미묘한 심리묘사를 보여주는데 중점을 뒀다. 권선징악을 넘어서 도영의 시각으로도, 사월의 시각으로도 볼 수 있는 드라마의 열린 구조는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의 각자의 시선에 따라 몰입할 수 있는 풍부한 여지를 안겨줬다.

<태양의 여자>의 성공은, 국내 드라마의 대안이 단순히 대작 판타지나 전문직 드라마라는 ‘소재 혹은 장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다루는 접근법의 차이에 있음을 보여줬다. 통속극이나 진부한 소재일 지라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차별화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며, 그 전제조건은 무엇보다 그 중심에 살아있는 우리 시대 인간(캐릭터)에 대한 공감대가 뒷받침되어야함을 일깨워줬다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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