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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종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미화는 없다"


입력 2008.03.24 17:52 수정        

뉴라이트 계열 대안교과서 근현대사 출간…실증적 사관 집필

대표집필자 박효종 교수“역사의 양면성 있는 그대로 그려”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기파랑 펴냄,  교과서포럼 지음.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기파랑 펴냄, 교과서포럼 지음.
보수적 시각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23일 출간되자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의 지식인 모임 ‘교과서포럼’(공동대표 이영훈·박효종·차상철)이 3년 넘게 준비해온 대안교과서는 2006년 11월 29일 원고의 시안이 공개되며 파장을 불러일으켰었다. 시안에서 4·19를 혁명이 아닌 학생운동으로 격하하고, 5·16을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미화했으며 일제 식민지 체제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우편향 사관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 출간한 교과서는 크게 논란이 됐던 부분은 수정하고 보다 정교한 논리를 담고 있다. 일본 강점기를 부정한 폭력적 억압체제로, 4·19를 혁명으로, 5·16을 쿠데타로 규정하며 표현의 수위를 낮췄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주류 역사학계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논조는 그대로 살아있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의 경제성장을 인정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업적 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념을 토대로 ‘성공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강조하며 국가정체성 바로세우기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1876년 개항 이후의 역사에서는 기존의 민족중심 역사관에서 탈피해 사료에 의거한 실증주의적 역사관으로 기술돼 ‘사실로서의 역사를 그리겠다’는 뉴라이트의 입장을 적극 반영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세습왕조나 다름없으며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국가”라고 혹평하는 등 대한민국의 성공과 대비하며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대한민국은 성공한 역사” 건국 정통성에 초점

대안교과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바로 쓰다”라는 머리글의 제목처럼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적 시선에서 바라본다. 대한민국 정통성에 초점을 맞추어 근대화와 산업화를 바탕으로 완성된 역사임을 강조한다. 헌법적 가치에 의거한 통일을 강조하고 북한 역사를 보론으로 따로 묶은 것도 이 때문이다.

먼저 갑신정변에 대해서는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를 부추겼다´는 기존 입장과는 달리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가 청에 대한 조공과 문벌 폐지 등을 시도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한국 근대화를 빛낸 선각자로 높이 평가했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해서도 “농민군의 폐정개혁안에는 탐관오리나 횡포한 부호 처벌, 노비 문서 소각 등의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며 “유교적인 근왕주의에 입각하여 서민의 경제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복고적 운동”이라고 저평가했다.

또 그동안 저평가된 역대 대통령에 대한 재해석도 시도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인권이 부정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면서도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올바로 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이 전 대통령이 주도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전시작전 통제권 이양에 대해서도 ‘한국의 자주권을 포기한 굴욕’이라는 기존 입장과 달리 ‘공산주의 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이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선 5.16을 군사쿠데타로 10월 유신체제를 ´또 한 차례의 정변´으로 규정하면서도 각각의 긍정적 면들을 인정했다. 5.16 쿠데타는 “급격한 경제성장은 한국인의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5·16 쿠데타는 근대화혁명의 출발점”이며 10월 유신체제는. “절대 권력을 성립시킨 체제였지만 행정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해 자주국방과 중화학공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서술한 것.

또 박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도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민족의 사대주의, 자주정신의 결여, 게으름, 명예심의 결여를 증오했고 민중의 고난과 가난에 근원적으로 분노했다”며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소수 엘리트의 지도적 역할을 중시한 인물”로 그의 리더십을 재조명했다.

반면 김구 임시정부 초대 주석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서술했고 김일성에 대해서는 ‘1937년 항일 투쟁으로 민족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유명해졌으나 북한정권 수립 이후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이 점점 심화하는 비극의 역사를 펼쳤다’고 비판했다.

일제 식민지에 관련해서는 “한국인의 정치적 권리를 부정한 폭력적 억압체제”로 평가하면서도 일제의 폭압적 지배와 수탈, 그에 대한 저항(항일)과 협력(친일)의 이분법적 시각을 배제했다. “이 시기가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했다”고 서술했다. △토지 재산에 대한 증명제도가 완비돼 토지거래가 활성화되고 △근대적인 사유재산제도가 성립됐으며 △조선총독부의 민사령을 통해 공식적인 신분제가 폐지됐다는 점 등을 인정했다.

이와 함께 각 분야, 각 시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인물 소개에 주력해 포철 신화를 이룬 박태준씨, 이미자, 조용필씨 등을 소개해 문화사적 접근을 시도하는 파격도 연출했다.

박효종 “근대화 미화는 없었다”

한편 대안교과서의 내용이 공개된 23일부터 각 포털사이트에는 수천개 이상의 댓글이 붙으며 논란이 불붙었다. 일부 진보 성향의 언론 및 정치권은 ‘우편향’ ‘색깔공세’ 등으로 표현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매국노” “역사 왜곡” 등 격한 표현도 적지 않고 다음 아고라에는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 출간 중지를 위한 서명운동’도 시작됐다. 민족의 자긍심을 말살하고 보수를 앞세워 자기 입맛대로 역사를 재편한다는 우려와 반발도 잇따르고 있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은 24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일본 우익들의 망언이 또 시작되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국내 소식이다”라며 “사실을 왜곡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미화했다는 점에서 일본 우익들의 역사왜곡과 판박이”라고 맹비난했다.

진보신당 송경아 대변인도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이단적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역사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일정 이상의 세력을 갖고 있고 청소년을 상대로 포문을 열었다는 것 때문”이라며 “대통령부터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민족주의’를 주문했으니 교과서 포럼만의 문제는 아닌 바 대통령의 역사 인식을 묻고 싶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이에 대해 대표집필자인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24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집필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논의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현행교과서는 역사적 사료와 사실 그 자체를 전하지 않고 왜곡하거나 숨겨 온 사례가 많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지 왜곡이나 미화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 인정 논란에 대해 “이 부분 일부 보도와 달리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억압과 수탈이라는 본질은 그대로지만 일제 강점기가 한국인의 삶에 무가치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섬세하게 조망했다”고 반박했다.

박 교수는 “선입관을 갖지 않고 2006년 발표됐던 시안과 이번에 나온 대안교과서를 비교해 읽으면 그 차이가 보일 것”이라며 “물론 기존 주류 역사학계의 입장과 대치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실증 사료에 의거, 역사의 양면성과 그 속에서의 한국인의 삶의 과정과 발전의 모습을 형상화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은 이같은 역사의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러한 사실들이 있는데 우리의 역사가 부정적이기만 하다는 게 말이 되느냐.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를 통해 청소년들이 보다 균형잡힌 역사관을 갖고 성공한 역사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우편향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과 정통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때라고 느꼈기에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 뿐”이라면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을 부정해 온 북한 수령 체제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그린 것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헌법적 가치 존중이라는 관점에서 어긋났기 때문이지 결코 보수적 사관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고 반론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입장을 강요하자는 의도가 아닌 만큼 토론회나 캠페인 등 기존 역사학계와의 대화를 통해 미흡한 부분들을 보완할 생각”이라며 “물론 좌우대립이 있는 상황에서 쟁점이 될 수 있겠지만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발전적 역사관을 정립하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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